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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생활 2.5년

캐나다생활 2.5년...

 

지금으로부터 4년 전 2016년 12월 27일 우리 4명의 가족은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내의 유학을 빙자한 합법적 휴직을 하고 온 가족이 이역만리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지 전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자판 앞에 앉았다.

 

 

1. 우리의 일탈에 대한 꿈은 1년 전(2015년 겨울 즈음)에 시작되었다.

"여보! 캐나다에 이런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공부해 보면 어때?, 당신이 study permmit(학생비자)를 받으면, 난 open work permmit(워킹비자)를 받을 수 있고, 아이들도 open study permmit을 받을 수 있다는데..." 아내는 나의 사탕발림(?)과 같은 유혹을 단숨에 물지 않았다. 아내는 기도하고 응답받기 전에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 우리가 처음 부산에 올 때도, 하나님이 부산에 부르셨다는 기도 응답의 확신을 받고 움직였다. 머지않은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유학에 관해 확신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2. 일반적인 기준에서 우리 가족의 삶은 약간 다르다.

- 난 공립학교를 그만두고 사립학교로 이직했다. 일반적으로 사립학교 선생님이 공립학교로 이동하신다.

- 그래서 우리 부부 각자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다. 우리 집사람은 서울 토박이고 결혼 전까지는 한 번도 서울을 떠난 적이 없다. 생각해 보니 정말 고맙네...

- 우리 두 부부는 아이들을 홈스쿨링으로 키웠다. 아빠가 교사인데 자녀들을 홈스쿨링 했다.

- 40대 중후반의 나이에 집 팔고 차 팔아 유학(2년 6개월)을 다녀왔다. 그래서 현재 무주택자다.

 

우리의 삶에서 이런 일탈들이 일어날 때면 너무 무모하다고 걱정(?) 하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어떤 인간들인지 궁금해한다. 그렇다고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다. 소위 무데뽀(?)도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기 전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썰을 풀어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4년 만에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다.